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브래니프 항공 (문단 편집) === 몰락 === 1978년, 카터 행정부에 의해 항공운수 자유화가 실시되었다. 이 때문에 [[1978년]] 말부터 LA와 보스턴에 허브를 신설하고 노선을 대규모 확충하게 되는데,[* 16개의 도시에 새로운 서비스를 시작하고, 그와 동시에 32개의 신규 노선을 개설했다. 홍콩 등 아시아에 진출하게 된 게 이때이다.] 효과는 좋았지만 하필이면 [[오일쇼크]]가 발생해서 전체적인 유지비가 상승, 적자를 기록한다. 한국 노선에 취항하던 1979년부터는 [[에어 프랑스]] 및 [[영국항공]]과 합작해 [[콩코드]]를 도입하기 시작했다.[* 특이사항으로 브래니프가 도입한 기체는 공동운항을 상징하듯이 반반도색을 했다. 왼쪽에는 브래니프, 오른쪽에는 영국항공/에어프랑스의 도색을 했다. 후에 [[싱가포르 항공]]이 공동운항 할 때도 같은 방식으로 운영했다.] 노선은 [[댈러스]] - [[워싱턴 D.C]] - [[런던]]/[[파리(프랑스)|파리]]. 그러나 이 사업은 큰 적자를 내며 망해버렸고 이 일은 회사에 있어 매우 큰 악재로 돌아와 건실하던 브래니프를 망하게 하는 직접적 요인이 된다. 유지비도 유지비였지만[* 가뜩이나 운영시기가 [[오일쇼크]]가 한창일 때였다.], 애초에 브래니프가 운영하던 [[댈러스]]~[[워싱턴 D.C]] 노선 경로[* 전 구간 내륙 노선이었다. 여기서 초음속 비행을 했다가는 지상에 소닉붐이 울리면서 아래에 사는 주민들에게 큰 민폐가 되며, 그렇다고 초음속 운항을 안 했더니 [[동춘여객|가격은 퍼스트, 좌석은 이코노미]]라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졌다. 거기다 편당 '''최다''' 탑승률이 '''15명'''이었으니, 적자가 안 나는 게 이상할 판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. 콩코드 여객기 승객이 92~120명인 것을 감안하면, 최대 승객의 1/6~1/8만 태우고 비행기를 운항한 셈. 요즘 기준으로 보면 [[보잉 777-300ER]]에 40~55명만 태우고 운항한 셈이다.][* 그나마 콩코드가 흑자를 본 대서양 노선의 경우에도 먼 바다로 나가고 나서야 초음속 비행을 시작했기에 소닉붐 논란에서 자유로웠으며, 비슷하게 [[싱가포르항공]]도 싱가포르 - 바레인 - 런던 노선에서 [[영국항공]]과의 공동운항으로 콩코드를 리스했을 때 전 구간 초음속 비행을 하다 말레이시아 지역에서 소닉붐으로 인한 민원이 들어와 역시 창렬이 되어 탑승률이 바닥을 기었다.]에서 콩코드 손님이 나올 리가 없었다.[* 콩코드의 주 수요층이 비즈니스 고객인데, 두 지역 모두 비즈니스 수요가 있다기엔... 차라리 [[시카고]] 같은 비즈니스 수요가 보장된 곳에 투입했다면 망하진 않았을 것이다. 그렇다고 해도 [[소닉붐]] 때문에 시끄럽다고 빗발치는 항의는 못 피했을 테지만...] 브래니프 항공은 나중에는 10%의 추가요금까지 없애 일반 퍼스트 클래스 항공권과 가격이 같게 했지만 승객들은 늘지 않았다. 애초에 [[댈러스]]부터가 탈 만한 수요층이 없는 걸... 결국 [[1980년]] [[6월 30일]] 콩코드 서비스를 종료한다. 한때 가장 높은 수익과 성장률을 보이던 브래니프 항공은 이 [[콩코드]]와 기타 여러 이유 때문에 매우 큰 하락세를 타게 된다. [[1978년]]까지 흑자였던 항공사는 [[1979년]] 약 4천만 달러의 손실을 낸 이래 80년 1억 2천만 달러, 81년 1억 7백만 달러의 손실을 낸다. 게다가 안 그래도 이때 [[오일 쇼크]]로 유류비가 '''94% 상승'''한 상황인데도 과도하게 허브를 신설하고 장비를 도입하는 바람에 대규모의 부채가 쌓였다. 또한 본사마저 러브필드에서 [[댈러스-포트워스 국제공항]]으로 옮기며 엄청난 돈이 깨져나갔다. 계속되는 재정난으로 채권단은 하딩 로렌스를 회장직에서 내려오게 하였고, 결국 로렌스는 1980년 12월 31일에 회장직에서 물러났다. 그리고 채권단은 [[아시아]]/[[유럽]] 지역 노선을 철수시키게 했는데, 이때 후술할 한국 노선도 폐지되었다. 그 와중 [[1981년]] 여름 항공관제사들의 파업으로 또 손실을 입었다.[* [[로널드 레이건]]이 관제사들을 대량해고시키고 그 자리에 군 관제사들을 채워넣은 것으로 유명한 그 사건이다.] 이후 퍼스트 클래스를 없애는 등 계속해 자구책을 내놓았지만 내놓는 족족 실패로 돌아갔고, 결국 더 이상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 [[1982년]] [[5월 11일]]에 브래니프 항공은 파산을 선고받았고, 바로 다음날인 [[1982년]] [[5월 12일]], 브래니프 항공은 영업을 중단하고 폐업함으로써 54년간의 역사를 마감했다.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braniff_highcolor.png|width=100%]]}}} || || 파산 당일에 [[댈러스-포트워스 국제공항]]에 머물러 있는 브래니프 항공의 비행기들. || 브래니프 항공의 폐업에는 황당한 에피소드가 2개 전해진다. 먼저 1982년 5월 12일 아침에 댈러스 포트워스 국제공항에 있던 승객들은 브래니프 항공의 모든 항공편이 갑자기 결항되자 당황했지만, 얼마 후 '브래니프라는 회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'는 선언을 듣고 모두 하기했다고 한다. 거기다가 이날에 이미 공중에 떠 있던 브래니프 항공 소속 비행기들은 목적지에 접근한 경우가 아니었으면 모두 강제로 호출되어 브래니프 항공의 허브 공항이던 댈러스-포트워스 국제공항으로 회항당했다고 한다. 파산 이후, [[1983년]] 기존의 자재를 인계받아 다시 시작했다가 망했고(1983~1989), 다시 한 번 시작했다가 망했다.(1991~1992) 그리고 9년 뒤인 [[1991년]]에 [[팬 아메리칸 항공]]도 똑같은 일을 겪게 된다.[* 다만 차이점은 이쪽은 [[보잉 747]]을 무리하게 도입하고 알맞는 수요가 안 나는 노선에도 투입하는 바람에 사실상 이 항공사와 같은 운명을 맞았다.] 혹자는 이 항공사의 몰락에 대해 '다채로움을 지향하던 항공사답게 최후까지도 다채로웠다'라고 농담조로 말하기도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